본문 바로가기

세상 별의별 이야기

술잔 하나를 3억주고 산 바보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아니 이 무슨..낡은 술잔을 천원씩(현재 가치 약 3억원)이나 주고 사???"

 

"저넘 저거 미친놈 아닌가? 바보인가??"

 

 

출처: gogi22.egloos.com

1930년대 일제의 치하 경성 (서울)

 

6천억(현재 가치)이 넘는 재산을 가진 청년이 있었습니다.

 

출처: www2.lowell.edu

당시 우리나라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뜻하지 않은 가족들의 잇따른 사망으로 인해

 

친가와 외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유일한 상속자가 되어

 

불과 23세에 조선 최고의 부자중 한명이 되었기에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였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기와집 열 채 값을 치르고 달랑 그릇 하나를 사오곤 했던 청년...

 

“또야?”


“저런, 집안을 말아먹을 철부지 같으니라고!”

 

주위에선 이 이상한 청년을

 

돈이 많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철부지라며 욕하기도 하였습니다.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낡은 그릇, 낡은 그림, 낡은 책과 같은 골동품들을

 

말도 안되는 높은 가격에 사들인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이 물건은 그냥 1000원만 주세요.”

 

“아니요, 5000원 드리리다.”

그렇게 5000원에 산 너덜너덜한 그림을 다시 6000원을 들여 손질했던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바보같다고 해야할지 모를 청년....

 

어느덧 재산은 점점 줄어만 가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오래된 물건들은 점점 쌓여만가는데······

 

마지막 남은 재산인 1만 마지기 논마저 팔아 일본으로 건너간 청년은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였던 위창 오세창 선생을 스승으로 둔 이후 

 

스승의 조언으로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막대한 재산을 온갖 골동품을 수집하는데에 모두 사용하였습니다.

 

출처: 법보 신문

어린 나이에 일찍이 가족들을 모두 잃어

 

외로운 인생에 나라의 망국지한까지 겹친 탓이였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며 어떻게 그리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이 청년은

 

스승 오세창 선생을 만나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꼭 독립할것이네,

 

어느 나라든 문화가 높은 나라가 낮은 나라에게 영원히 합병된 역사는 없었고

 

그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네,

 

일제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네"

 

출처: 우리문화신문
출처: 한겨레

그랬습니다.

 

한 해에만 수만점의 문화재가 약탈되어 해외로 팔려나가던

 

우리 문화의 암흑기인 일제 강점기

 

스승 오세창 선생으로부터 간송이라는 야호를 받은 재력가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전형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빛나는 보물을 모아둔 집'이라는 의미의 보화각(현재의 간송 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 선생이였습니다.

 

출처: 백세시대 신문

막대한 유산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아갈 수도 있었던 전형필은

 

전 재산을 사용하여 우리나라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것을 막아 민족 문화의 유산을 지켜내었고

 

그가 지켜낸 골동품들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세계의 찬사를 듣는 고려 청자와 조선백자,

                               단원 김홍도의 씨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씨름과 서당으로 유명한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의 풍속화 화첩을 비롯해

 

국보 12점, 보물 10점, 서울시 지정 문화재 4점 등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보물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려 청자에 대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고베항. 출처: 딴지일보

존 개스비라는 영국인이

 

일본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 도자기에 완전히 매료가 되어

 

당시 가지고 있던  현금을 모두 사용해 구입하던 그가

 

우연히 고려 자기를 보게되었고 그 신비롭고 아름다움에 끌려

 

고려자기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미술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무작정 도쿄(동경)에서 서울(경성)까지 달려와 도자기란 도자기는 모두 구입을 하였는데

 

그렇게 25년간 온갖 기행도 마다않고 모은 수십점의 고려자기는

 

모두 하나같이 국보급이였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가 어느날 돌연 수장품을 모두 처분하겠다고 하자

 

이를 전해들은 간송은 만사를 제쳐두고 도쿄로 날아가

 

무려 40만원(현 시가 12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구입하였습니다.

원래 더 높은 가격을 불렀던 개스비는

 

전형필이 어떤 사유로 그렇게 수집을 하고 있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되려 금액을 낮춰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간송 전형필도 그 어떤 물품들 보다 소중히 여긴 문화재가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의 위험한 상황도 모두 무릅쓰고서라도 꼭 찾고 싶어했던 책

 

그리고 그 책의 행방을 알게 되어 구입하러 갔다가

 

제시된 금액이 그 문화재의 가치와 맞지 않다며

 

되려 열배의 금액을 더 주고 사들인 책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였습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글 창제의 원리를 담고 있던 이책의 가치는

 

일제가 해례본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는 점만 봐도 알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유인즉슨 일제는 우리의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

진정으로 우리의 말과 글이 사라지길 바랬고

 

해례본을 없애면 한글창제라는 신화가 물거품이 될수 있으며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인 언어의 뿌리와 기원을 허구화하려 하였기 때문입니다.

출처:부안독립신문

간송 전형필 선생은

 

6.25 전쟁이 발발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버린 채 피난가는 와중에도 

 

이 훈민정음 해례본만큼은 가슴에 품어 지켜내었습니다.

 

그 결과 간송이 서거한 해 12월에 국보 제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도 등재 되었습니다.

 

 

 

간송에 의해 이 책이 지켜지지 않고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면

출처:영광군민신문

전세계적으로도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 인정받고

 

또 세계의 모든 문자중 유일하게 창작된 문자이자 그 기원과 원리를 알 수 있는

 

단 하나뿐인 문자인 한글의 위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민족을 말살하려던 일제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자긍심을 지키고 우리가 존재 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수많은 바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것입니다.